모자에 뭔가 묻으면 제일 먼저 물로 씻어내야 한다고 믿어왔다면, 그 상식이 모자를 망치는 원인이었을 수 있습니다. 저도 꽤 비싸게 산 흰색 야구모자를 그렇게 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파운데이션 얼룩을 지우려고 물을 들이부었다가 얼룩이 번지고, 챙까지 뒤틀려버린 그 기억이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파운데이션 얼룩, 왜 물로 닦으면 더 번질까
파운데이션이 모자에 묻었을 때 물로 씻으면 지워진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써봤는데, 물을 대는 순간 얼룩이 번지면서 섬유 안으로 더 깊이 파고드는 걸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당황해서 빠르게 헹궈봤지만 이미 늦은 후였습니다.
이유는 파운데이션의 성분 구조에 있습니다. 파운데이션은 친유성 얼룩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친유성이란 물보다 기름과 결합하려는 성질을 가진 물질을 뜻합니다. 파운데이션은 기름 성분 안에 색소 입자를 곱게 분산시킨 구조이기 때문에, 물이나 수성 세제를 먼저 접촉시키면 기름이 섬유 조직 안으로 더 깊이 침투하면서 색소 입자까지 같이 박혀버립니다. 그렇게 착색이 일어나면 나중에는 빼내기가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올바른 순서는 유성 용제를 먼저 사용하는 것입니다. 유성 용제란 기름 성분을 분해하거나 흡착해서 섬유로부터 분리시키는 약품을 말합니다. 기름을 먼저 제거하면 색소 입자를 붙들고 있던 공간이 넓어지고, 그 상태에서 문질러주면 입자들이 쉽게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물과 먼저 접촉시키는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겁니다.
저는 이 사실을 모자를 버리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세제 풀어서 문지르면 다 지워지는 줄만 알았지, 화장품에 기름 성분이 들어 있으니 기름 제거제를 먼저 써야 한다는 발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던 겁니다.
틴트와 염색약, 같은 방법으로 지워지지 않는 이유
파운데이션보다 더 완고한 얼룩이 있습니다. 틴트나 헤어 염색약이 모자에 묻은 경우입니다. 이 두 가지는 파운데이션과 성질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처리 방식도 달라집니다.
틴트는 합성수지가 함유된 제품입니다. 합성수지란 고분자 화합물의 일종으로, 한번 굳으면 일반적인 용제로는 잘 분해되지 않는 특성을 가집니다. 틴트가 입술에 오래 유지되는 것도, 밥을 먹어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도 바로 이 성분 때문입니다. 섬유에 묻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유성 제거제만으로는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는 열을 가해주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뜨거운 물을 소량 부어 온도를 높여주면 합성수지의 결합이 느슨해지면서 제거가 수월해집니다.
염색약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헤어 염색약은 에멀전 형태로 제조됩니다. 에멀전이란 기름과 물을 인위적으로 혼합해 안정화시킨 상태를 말하는데, 마요네즈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즉, 염색약 안에는 반드시 기름 성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염색약 얼룩도 유성 용제로 기름 성분을 먼저 분해한 다음, 남은 색소를 처리해야 합니다.
~라는 의견도 있지만, 실제로 써보니 틴트 계열은 유성 용제만으로 처리하려다가 색소가 옅어지지 않아 당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뜨거운 물과 병행해야 비로소 눈에 띄는 차이가 납니다. 연장도 중요한데, 넓은 수세미 대신 뾰족한 도구로 선을 따라 살살 긁어주면 국소 자극을 집중시킬 수 있어서 더 효과적입니다.
이마 땀 자국과 챙 얼룩, 알칼리 세제 원액이 필요한 이유
파운데이션이나 틴트보다 더 일상적으로 생기는 얼룩이 있습니다. 이마와 닿는 내측 밴드와 챙 안쪽에 쌓이는 피지와 땀 자국입니다. 여름 내내 모자를 쓰면 이 부분이 노랗게 변색되는데, 이것이 지방산 얼룩입니다. 지방산이란 사람 피부에서 분비되는 피지의 주성분으로, 피부 표면에서 산화되면서 특유의 누런 색을 띠게 됩니다.
이 얼룩에는 알칼리 세제 원액이 효과적입니다. 알칼리 세제가 지방산과 만나면 비누화 반응이 일어납니다. 비누화 반응이란 알칼리 성분이 지방산을 분해해 수용성 비누를 만들어내는 화학 반응으로, 이렇게 생성된 물질은 물에 잘 녹아 제거됩니다. 중요한 것은 원액을 써야 한다는 점입니다. 물에 희석하면 pH가 낮아져 반응이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리트머스 시험지로 측정하면 원액은 pH 12~13 수준을 유지하는데, 희석하는 순간 이 수치가 뚝 떨어집니다.
세탁은 결국 물리력과 화학의 조합이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여기에 동의합니다. 일반적으로 세탁을 그냥 세제 풀어서 빠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얼룩의 성질에 따라 도구와 약품을 바꿔가는 물리·화학적 과정입니다. 세탁 후에는 구연산으로 중화 처리를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알칼리 세제로 마무리하면 섬유에 알칼리 성분이 남아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pH 6~9 범위의 중성으로 끝내는 것이 이상적입니다(출처: 한국소비자원).

챙이 뒤틀렸다면, 전분풀로 형태를 살릴 수 있습니다
제가 모자를 버리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사실 얼룩보다 챙이 뒤틀린 것이었습니다. 물에 담갔다 꺼냈더니 챙이 위로 말리고 옆으로 휘어져서 원래 형태가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당시에는 모자가 젖으면 형태가 망가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그냥 버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젖은 상태에서 제대로 잡아주면 충분히 원상 복구가 가능했습니다.
방법은 전분풀을 먹이는 것입니다. 감자 전분이나 옥수수 전분을 소량 물에 풀어서 팥죽 정도의 농도가 될 때까지 가열한 뒤, 헹굼물에 희석해서 모자를 담가 주물럭거려줍니다. 전분풀이 셀룰로오스 섬유 사이의 공간을 채워주면서 뻣뻣하게 잡아주는 원리입니다. 단, 폴리에스터나 나일론 같은 합성 섬유에는 효과가 없습니다. 전분풀은 면, 마, 레이온, 텐셀 같은 셀룰로오스 계열 섬유에만 흡착됩니다.
풀을 먹인 뒤에는 탱탱볼에 씌워서 말리는 것이 핵심입니다. 탈수기로 꽉 짜버리면 원심력에 의해 풀이 빠져나가버리기 때문에 가볍게 물기만 눌러 제거한 다음, 탱탱볼을 모자 안에 넣고 부풀려서 형태를 잡은 채로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건조합니다. 저는 이 방법을 알고 나서 꽤 허탈했습니다. 그 모자를 살릴 수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거니까요.
모자 세탁과 관련한 소비자 피해 사례 중 형태 변형 문제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은 제품 관리 방법에 대한 정보 부족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습니다(출처: 한국소비자원).
모자 세탁에서 실패하는 경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파운데이션이나 틴트 얼룩에 물을 먼저 접촉시켜 착색을 심화시키는 경우
- 알칼리 세제 사용 후 중화 처리를 하지 않아 섬유에 알칼리 성분이 남는 경우
- 세탁 후 형태를 잡지 않고 자연 건조해서 챙이 뒤틀리는 경우
- 합성 섬유 모자에 전분풀을 먹여 효과를 기대하는 경우
모자 세탁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원리를 알고 나면 생각보다 단순하다고 봅니다. 얼룩의 성질을 먼저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약품과 도구를 쓰고, 마무리에서 형태를 잡아주는 세 단계만 지키면 됩니다. 비싸게 산 모자를 잘못된 방법으로 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저처럼 아까워할 필요가 없도록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8uIdMBewEAI&list=PLqKzoOo_-iYs37I1RtVwYeZzWbYyaD6QZ&index=4